작은 중국, 차이나타운에서 만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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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중국, 차이나타운에서 만난 것들
  • 입력2020-11-30 16:00:00


​<조계지 경계계단에 서 있는 공자 동상>

중국의 성인 - ​공자(孔子) 


공자(BC 551 ~ BC 479)는 중국 춘추시대에 노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공숙양흘’은 세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본처는 딸만 아홉을 낳고, 두 번째 부인이 아들을 낳았지만 걷지 못하는 장애아였습니다. 공숙양흘이 70살에 이르러 10대 후반의 세 번째 부인을 얻는데, 이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바로 공자입니다. 공자는 태어나면서 정수리가 함몰된 것처럼 머리가 두 개의 산처럼 솟은 모양이라, 어릴 적 이름은 ‘공구(孔丘)’라 불렀답니다. 십척장신의 아버지를 닮아 보통사람 보다 키가 커서 ‘키다리’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태어난 지 3년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편모슬하에서 엄격하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19세에 결혼하고 20세에 창고 출납사무원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공자는 남다른 학식으로 주변의 권유와 추천으로 주나라로 유학을 하고 왔습니다. 40세 이후부터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각 제후들의 문사 역할을 하면서 재상자리까지 오르지만 탐욕과 권력다툼의 세계에 염증을 느껴 고향으로 내려가 후학 양성에 매진합니다.


공자는 인의예지신이란 유교의 원리를 확립하고, 그 실천으로 문학, 품행, 충성, 신의를 강조하였습니다. 주요저서로 주역, 예악, 춘추, 시서가 있으며 제자들이 공자 사후에 그의 언행을 글로 정리한 논어는 맹자· 주역·대학과 더불어 중국사서(四書)로 오늘날까지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후대 공자의 영향을 받은 맹자와 함께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주장을 근거로, 태어난 이후 선하게 사는 것은 자신의 여하에 달려있고 비록 어떤 이유로 악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교육을 통해서 선하게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실천으로 그는 후학양성과 중국 최초의 민간교육(사학)을 창시하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공자의 사상을 엿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어록을 몇 개 살펴보면, 70살 인생을 구분하여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志學), 서른에 인생관을 확립하며(而立), 40세에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으며(不惑), 쉰 살에 하늘의 뜻을 깨달아 자신의 운명을 원망치 않고(知天命), 60세 노여움이 없고 (耳順), 일흔에 어떤 말과 행동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從心所慾)라며 인생의 척도를 제시했습니다.


또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즉,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이는 학문의 자세를 일깨우는 명 구절입니다.


참다운 앎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는 것이 참 앎이다’라고 답합니다.


나라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 즉,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며,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라고 역설합니다.


「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은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마라’의 의미이며, 「君子以行言 小人以舌言」 즉, ‘군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 한다’를 뜻합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일찍이 배운 글귀입니다.


‘효’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부모는 오직 자식이 탈날까 근심한다.”라고 전제하면서 효란 부모의 근심을 덜어드리는 것으로, 자식 스스로 건강하고 선을 행하여 바른 인생을 사는 것을 부모에게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효라 설파하였습니다. 이처럼 공자의 가르침은 사후 2천 5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치파오와 중산복


치파오는 엄밀한 의미에서 수 천 년 중국 전통의 의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마지막 왕조가 청나라였던 관계로 청나라 의상이 다른 시대 의상을 흡수하면서 오늘날의  중국전통의상 여겨지고 있습니다.


치파오는 우리나라 한복과는 달리 몸에 착 들러붙고 다리 일부가 보이는 옆트임이 특징입니다. 이 옷은 원래 만주족의 전통복인 ‘호복’으로, 말을 타고 다니기 편한 기마의상이었습니다. 말 달릴 때 저항을 줄이기 위하여 몸에 꽉 맞게 하였으며, 옆트임도 말에 오르내릴 때 편하게 하기위해 고안되었다 합니다.


만주족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우면서 치파오는 자연스럽게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우리의 한복처럼 특별한 날에  즐겨입는 중국 민속 의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차파오>
 

치파오는 본래 남녀 공용이었지만 지금은 주로 여성들이 특별한 용도 때 입습니다. 옷깃은 흔히 ‘차이니스칼라’라 하는 스탠드칼라이며, 근대에 들어와서 서양과 문화교류가 많아지면서 치파오도 서양의 옷 스타일을 채택하여 볼륨감을 살리고 칼라나 스타일도 다양해졌습니다.


치파오는 세계적으로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각종 국제패션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중국, 홍콩, 타이완, 화교들을 중심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치파오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인민의 의상이라고 할 만한 옷이 바로 ‘중산복’입니다. 중산복은 1911년 중국의 정치 지도자인 쑨원[孫文]이 인민들 생활의 편의를 위해서 고안한 복장이라고 합니다.


<중산복>

쑨원의 호가 ‘중산’이라서 그명칭이 유래되었으며 보통 인민복이라고 부릅니다. 이 옷은 '여민 옷'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 깃 끝이 둥글고 목 부분부터 단추로 여미게 되어 있다하여 붙여졌다 합니다. 최근까지 중국인들이 가장 애용하던 복장이었으나 개혁개방 정책 이후 도시인이나 젊은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농촌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즐겨 입으며 고급 재질의 중산복은 중국의 당정 지도부 내에서도 최고 지도자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중산복을 입고 공식회의나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총서기나 고급관료에 한정하고 있습니다.


1998년 11월 26일 장쩌민 주석이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만나는 자리에 사회주의의 상징인 중산복 차림으로 나타나 긴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공산권 국가의 정장'으로 통하는 중산복은 북한에서도 예복과 평상복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착용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진시황 주검을 지키는 병마용


차이나타운의 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 낯설지 않은 사람 석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병마용’이라 부르는 중국 고대 진나라(기원전 900년경 ~ 기원전 206년)의 군인 모습입니다. 보다 가까이 다가서서 섬세하게 빚어진 병사의 미묘한 표정과 마주 했을 때, 마치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이름 모를 누군가와 시간을 초월해 맞닥뜨리는 경이감에 사로잡힙니다. 이런 느낌이 바로 병마용의 묘미라 할 수 있겠지요.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기원전 247년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능을 둘러싼 둘레가 자그마치 사방 25km 이르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황릉 내부에는 각가지 부장품과 수은으로 가득 찬 강이 흐른다고 하지만 기술적인 이유로 발굴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황릉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진시황을 지켜주는 병마용 갱은 발굴되어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합쳐 부르는 말이고, 병마용 갱이란 병마용이 묻혀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 갱들은 2천2백 년 전 불멸의 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생전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진시황 이전에는 권력자가 죽으면 그를 모시던 사람들이 함께 죽임을 당해 무덤에 묻혔는데 이를 ‘순장’이라 하며, 이런 제도의 폐단이 커서 이후에는 순장 대신 병마용을 만들어 묻었습니다.


<시안 병마용 갱에서 출토된 실제 병마용>
 

황릉과 더불어 세계 8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병마용은, 심한 가뭄으로 우물을 파던 한 농부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1974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4개의 갱이 발굴되었으나 그 중 4호 갱은 완성되기 전에 폐기된 빈 갱도였습니다. 매장된 전체 도용(병사)은 약 6,000개로 추정되며, 도용의 크기는 1.75~1.86m, 마용(군마)은 높이 1.5m, 길이 2m의 실물대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갑옷을 입고 무장한 군인들의 엄격한 표정이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완전 발굴된 3호 갱은 지휘부로 추정되며, 장군의 것으로 보이는 채색된 전차 1량과 갑옷 입은 보병용 64건, 마용 4건이 출토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지니고 있는 무기들은 대부분 당시 사용된 진짜 무기인데, 당국에서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병마용 들은 제작 당시 모두 채색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퇴색되어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병마용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병마용은 발굴되기 전까지 지하에서 이천오백여 년을 굳건히 버티며 진시황 친위군단의 강력한 위용을 과시했지만, 세상에 모습이 드러나면서 현재는 당시 진나라의 군사편제 ·갑옷 ·무기 등의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습니다.


병마용 갱의 발굴이 계기가 되어, 황릉이 있는 중국 시안은 세계적 관광도시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박물관을 짓고 진시황과 관련된 각종 기념품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특히 병마용 모조 복제품이 세계 도처에 불티나게 팔려 나가면서 중국문화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쌍사자상


차이나타운에는 사자상이 무척 많은데, 두 마리가 한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럴 때 어느 것이 암놈이고 어느 것이 수놈이냐고 물으면, 사자상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의 경우 그 대답이 다양하여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사자의 한문 사(獅)자는, 사자가 고양이 과에서 우두머리임을 나타냅니다. 중국에는 원래 사자가 없었는데, 후한 때 장건이 서역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사자를 가지고 왔다는 설과, 인도에서 중국에 불교를 전해질 때 인도 사자도 같이 들어왔으며 이 후 사자에 대한 기록도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불교와 함께 소개 되어진 사자는 ‘법의 옹호자’ 또는 사원이나 궁궐 등 신성한 건물의 수호자 역할을 하며 간혹 무덤의 경내를 지키는 사자도 있습니다. 또한 사자는 지혜와 용맹, 정력적인 힘의 상징으로 중국 장수들의 의상에 무서운 사자 모습을 수놓았습니다. 반면, 평상시 사자는 고양이처럼 장난기 많고 모성애가 남다른 짐승으로 중국인들은 여겼습니다.


<쌍사자상 - 암컷의 모습>
 

중국 전설에 의하면 암사자의 앞발바닥에서 젖이 나오고 고양이처럼 공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자가 잘 나타나는 장소에 공을 여러 개 놓아두면 사자들이 마음껏 놀다 돌아가는데, 떠나간 자리에는 암사자가 흘린 젖이 흥건하여 그 젖을 담아와 마시면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해서 중국거리에 보이는 사자상은 예외 없이 암수 두 마리가 서 있으며, 수사자는 한 손에 공을 쥐고 있고, 암사자는 어린 사자에게 발바닥으로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암수가 앉는 위치는 중국 전통의 음양사상에 따라 ‘남좌여우-男左女右’, 즉 수사자는 좌측, 암사자는 우측에 앉힙니다. 그러나 보는 방향에서의 좌우가 아니라 북쪽에 앉아 남쪽을 향하는 황제의 시선에서의 좌우를 말하기 때문에 혼동되기도 합니다.


중국인들이 흔히 즐기는 전통놀이로서 ‘요사자 - 사자춤’이 있는데, 2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며 정초나 경축행사에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합니다. 이 놀이는 형용색색의 천이나 종이로 만든 사자 몸뚱이 속에 두 사람이 들어가 힘찬 율동으로 춤추며, 다른 한 사람은 알록달록한 커다란 공을 들고 사자 얼굴 앞에 흔들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춤추는 놀이입니다. 여기서 사자를 희롱하는 커다란 공은 생명과 힘의 상징인 태양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자춤은 사자를 통해 자연현상과 인간의 정신세계를 잇는 매개자 역할을 하며, 풍년을 기원하고 악귀를 쫓아 복을 불러오는 신성한 의식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자춤은 주술적 의미보다는 축제나 특별한 행사에 빠질 수 없는 흥겨운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사자춤 말고 중국 전통 놀이로 ‘용춤’도 있는데, 용춤은 천이나 종이로 크고 기다란 용을 만들어 여러 명의 사람들이 대나무나 끈으로 용을 지지하며 이리저리 빙빙 도는 춤입니다. 용춤의 기원 역시 사자춤과 마찬가지로 한 해에 비가 알맞게 내려 농사가 잘되게 비는 의식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용춤은 사자춤과 더불어 농사가 시작되기 전의 춘절과 원소절에 행하였습니다. 


지붕 위에서 나쁜 기운을 감시하는 잡상


다섯 명의 신을 모신 의선당 중심 건물은 맞배지붕에 노란색 기와(황와)로 일반 건물과 격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붕 용마루 양 끝에는 ‘이문-치미, 취두, 망새라고도 함’이라 부르는 용의 자식이 앉아서 하늘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문’은 눈이 밝아 먼 곳까지 잘 볼 수 있고, 물을 엄청 좋아해서 하늘에서 벼락을 타고 내려오는 불을 다스린다하여 용마루에 둔다고 합니다. 


용마루 끝을 기점으로 꺾여 내리는 추녀마루에도 수 개의 사람과 짐승의 석상이 줄지어 있는데 이를 ‘잡상’이라 합니다. 의선당의 잡상을 보면 추녀 끝은 ‘용두(용머리)로 장식되어 있고, 그 뒤로는 닭 위에 앉아 있는 사람(민공)과 연이어 용, 봉황, 사자, 기린, 천마 등이 앉아 있습니다. 


<의선당 지붕 위의 잡상 - 맨 앞의 사람은 닭 위에 앉아있는 민공이다>
 

잡상의 유래는 기원전 283년 ‘서진’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나라는 무지막지한 제왕 ‘민공’의 폭정으로 백성들을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렸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변 연합군들이 쳐들어와 성을 함락 시켜버렸습니다. 이 때 민공은 도망칠 곳이 없어 지붕 처마 끝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는데,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렇게 매달린 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죽어 갔다고 합니다. 이 후 제나라 사람들은 그의 악행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닭에 올라 탄 그의 모양을 빚어 지붕 위에 얹어 놓았습니다. 그를 등에 태운 닭은 몸이 무거워 날을 수가 없으니 땅으로 내려오지 못할 테고, 지붕 위로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용두(용머리)로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잡상에 관한 또 다른 유래도 전해옵니다.


당나라 태종은 말년에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려 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자신으로 인해 죽은 무수한 사람들이 귀신이 되어 꿈에 나타나 지붕의 기왓장을 던지며 괴롭혔습니다. 태종은 무사들을 침전 문 앞에 두었지만 별 효험이 없어서, 서유기에 등장하는 각종 벽사의 신들을 ‘토우’로 빚어 지붕에 얹혔더니 귀신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후 ‘잡상’은 유행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행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잡상 형태는 당나라 것을 따랐기 때문에 맨 앞이 말을 탄 삼장법사고 그 뒤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마화상 등을 얹혀 놓는다합니다. 따라서 두 가지 유래에 따라 닭 위에 민공을 앉히고 짐승을 나열 하는 경우와 삼장법사 뒤로 손오공 등이 따르는 잡상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참고로 중국 자금성의 잡상이나 차이나타운의 의선당 것은 민공과 짐승 모습인데 비해, 우리나라 남대문이나 궁궐에서 보이는 것은 삼장법사의 것입니다.


‘잡상’은 반드시 ‘홀수’로 앉혀야 되는데, 의선당은 6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냥 건물의 구색을 맞춘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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